여행/20겨울, 쿠바

[쿠바 #1] 아바나 공항의 냄새

HLLM 2020. 7. 21. 11:38

밤 11시 46분, 비행기 바퀴가 아바나 땅에 닿았다.

 

아바나 공항의 냄새는 불과 6개월 전 다녀왔던 베트남 나쨩의 냄새를 떠오르게 했다. 향 피우는 냄새가 옅게 났고 건식사우나 냄새가 섞여 났다.

(다음날 해가 뜨고 걸어본 아바나는 아스팔트 도로가 군데군데 파여 있고 차 매연 냄새가 나 블라디보스톡과 비슷했다. 여행 일정 동안 이런 면들이 딱히 부정되지 않았고 나에게 있어서 쿠바는 나짱과 블라디보스톡을 섞어놓은 느낌이었다.)

잠깐의 소회를 가진 후에 블로그에서 본 아바나 클럽 광고판 등을 거쳐 수하물 벨트에 도착했다. 일찍 나온 편이긴 했지만 15분째 벨트가 돌아갈 생각도 안한다. 여행객들이 슬슬 사무실로 보이는 곳 근처를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여행객들의 맘을 모르는지 사무실에선 직원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흥이 많은 쿠바가 맞구나. 

 

<사진1> 수하물 대신 흥겨운 노랫소리가 새어나오는 중

 

 

배낭을 찾고 나와서 환전부터 하려는데, 아니나다를까 삐끼 한 명이 붙어서 ‘땍시?’를 시전한다. '중개인'이라는 표현도 생각해보았으나 아무래도 그 인간이 시전 했던 일련의 행동들로 인해 삐끼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더 어울릴 것이다. 입에 착 붙기도 하고.

시스템은 이러하다. 삐끼는 가격협상을 끝낸 호구승객을 기사에게 넘겨주고 같이 보조석에 탄다. 기사는 태워다 주고 요금 중 일부를 중개인에 지불한다. 택시 기사들은 삐끼들과 어떻게 공생하게 됐을까. 아마 처음엔 승객과 기사가 직접 협상하는 시스템이다가, 삐끼들이 개입해 호구승객을 먼저 유치해 데려가면 하는 수 없이 동의한 기사그룹들부터 잠식해 들어간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여튼 없는 가상의 친구를 찾고 있는 중이라 둘러대며 환전소를 찾았다. ‘환전부터 하고 나서 상대해주마 삐끼들아…’전의를 불태우며 환전소를 찾았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을 시킨다. 캐나다 달러 밖에 없어서 환전 먼저 할 거라고 하니 '환전소 문 닫았으니 일단 택시비는 지금 가지고 있는 캐나다 달러로 지불해라. 호텔가냐' 하며 혼을 빼놓는다. 하지만 난 이미 다 알고 왔다고. 핑계대며 따돌리고 상대적으로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공항 직원들에게 환전소를 물어봤다. 역시나 삐끼가 날 속였다. 2층 실내 환전소는 닫았지만 1층 실외는 열렸으니 거기서 하면 된다고 한다. 그제서야 따라다니던 삐끼가 멋쩍어하....나 싶었는데 아니, 끝까지 뻔뻔하게 ‘환전하고 땍시 고?’를 시전한다. 녀석...

 

끊임없이 입을 놀리는 그 녀석을 이젠 그냥 투명인간 취급하기로 하고 환전 대기 줄에서 세 팀에게 합승제의를 했다. 하지만 나와 목적지가 다르거나 숙소에서 픽업 온다고 해서 불발. 환전은 택시비+비상금만 했다. 환전이 끝나니까 다시 따라붙는 그 녀석을 나 역시 끈질기게 따돌리며 합승할 다른 팀 없나 기회를 봤다. 입국심사장을 빠져나온 관광객들을 훑는 나도 어느새 삐끼들과 같은 포지션이었다. 근데 사람이 잘 안보인다. 내가 탄 기체에만 150명 정도 탄것같고 파나마항공 타고 온 사람들도 같이 나왔는데... 좀 헤매고 환전한 1시간 채 안되는 사이 사람들이 다 빠져나갔나보다. 나오는 사람이 이제 손에 꼽는다. 택시삐끼 무리 사이로 남녀 한쌍이 흥정을 하고 있다. 슬며시 접근해 폰 속 지도를 힐끗 보니 내가 예약한 숙소 가는 길하고 비슷하다. 스윽 Can I join you? 추파를 던졌다. To save money? Sure!

 

이 친구들 말이 통하네. 굿! 이들은 삐끼와 기사가 한 목소리로 목적지까지 20쿡을 불러서 맘에 안 든다고 했다. 내 전담 삐끼가 나 20쿡에 데려다 준다고 했는데 내가 더 머니까 10쿡, 너네 합쳐서 10쿡. 콜? 콜!

다행히 내 전담 삐끼는 우리팀 통틀어 20쿡에 오케이를 했다.

아쉬워하는 삐끼들을 뒤로 하고 우린 쿠바에서의 첫 승을 거머쥔 채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10쿡에 오다니. 하핫. 다 알고 왔다니까~

 

<사진2> 먹이를 놓친 하이에나들. 응~ 다 알고 왔어~

 

 

동승자인 차로와 켈리는 퀘벡 몬트리올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짧은 영어로 대화를 힘겹게 이어나가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덜컹댐에도 불구, 엄청나게 밟아대는 택시에 긴장한 탓인지 곧 침묵했다.

 

<영상1> 아스팔트가 군데군데 파여 있지만 엄청나게 밟아댄다

 

 

자정이 훌쩍 넘은 센트로아바나의 아래쪽에 위치한 동네 골목은 가로등이 띄엄띄엄 있어 매우 어두운 분위기였다. 거기에 건장한 청년들이 웃통벗고 삼삼오오 모여 있으니 무서웠다. 

<영상2> 새벽 3시 센트로아바나 외곽 동네의 골목 분위기

예약한 에어비앤비가 있는 골목에 도착했다. 새벽3시 즈음인데도 호스트인 Felix 아저씨가 나와계셨다. 아니 사장님... 주무시고 계시죠 왜... 미안함과 감동.

 

숙소로 들어가보니 2층은 호스트 부부가 쓰고 좁게 난 건물 내 계단을 오르면 침대 2개인 방 하나, 샤워실, 변기 및 세면대가 있는 공간(도저히 화장실이라고 할 순 없는)이 아주 컴팩트하게 모여 있는 3층을 까사로 쓰는 구조다. 오늘은 나 혼자다. 좁고 좀 낡긴 했지만, 또 중심지 까삐똘리오까지 도보 15분으로 아주 가까운 건 아니지만 조식포함 10쿡이니 만족한다.

 

긴 하루였다. 지쳐 금세 잠이 들었다.

 

다음날 계획.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진 3대 까사 중 하나인 호아끼나로 숙소를 옮기고

쿱으로 환전, 시간이 된다면 에어비앤비 홈페이지에서 본 프리투어도 노려보겠다.

 

출처

갤럭시 S9+ 기본카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