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intro#1] 왜 쿠바인가
카리브해에 뒤집힌 악어 모양을 하고 있는 섬나라, 쿠바.
쿠바를 여행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긴 겨울 중에 잠시라도 따뜻한 쪽을 여행하고 싶었다.
후보지를 미서부, 플로리다, 쿠바로 추렸다.
두 번째, 2주의 여행기간과 $800의 예산에 부합해야 했다.
미국에 올 때부터 서부여행을 벼르고 있었다. 이왕 가는 김에 베가스 등 주변 여행지까지 욕심이 났지만 곧 2주로는 짧다는 결론이 났다. 게다가 800불의 예산으로는 택도 없었다. 비행기티켓이 300, 숙박이 최소 1박에 50불이니 말이다. 플로리다는 혼자 2주를 여행하기에는 볼거리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만한 거점 도시들을 비교적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고 무엇보다 물가가 싸서 예산이 적당한 쿠바로 낙점했다.
세 번째, 미국인들에겐 여행이 제한되는 쿠바에 대한 신비감이 생겼다. 거기에 소심하고 유치한 복수는 덤이다.
미국인 친구와 얘기하다가 미국인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쿠바 여행이 제한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미국 최남단 키웨스트에서 약90마일(15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날씨가 좋으면 보일 정도인데 말이다. 오바마 행정부 때는 아바나에 대사관을 설치할 정도로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져 여행이 비교적 자유로웠었지만, 트럼프가 들어서면서 도루묵이 됐다.
석사 시절 남북관계를 주제로 하는 캠프 일정 중에 가이드 분께서 북한에 가 본 학생이 있냐고 물으셨다. 미국인 친구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우리는 한민족임에도 갈 수 없는 처지인데, 오히려 미국인들에게는 관광상품이 있을 정도로 여행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었다. (오바마 행정부 때 일이었다.) 소심하고도 유치한 복수의 일환으로 나는 미국인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쿠바를 여행하고 싶어졌다.
여행지로 쿠바를 낙점하고 나서는 신나게 볼거리, 숙소, 교통수단 등을 알아봤다.
블로그와 유튜브 영상부터 시작해서 르포, 책, 영화, TV 프로를 통해 정보를 얻었다.
19년 초에 방영한 TV 프로그램 "트래블러"를 통해 유명 여행지로 급부상하면서 그 즈음의 유튜브 영상과 블로그 포스팅들이 많았다. 주변 지인들에게도 쿠바 여행 간다고 하니까 트래블러 본 얘기를 하더라.
찾아볼 수록, 알아볼 수록 쿠바는 매력적인 나라였다.
사회주의 공산국가, 미국의 경제제재, 올드카, 카리브해,
피델 카스트로, 체게바라, 헤밍웨이,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살사,
모히토, 다이끼리, 쿠바 리브레, 칸찬차라 등의 칵테일, 시가,
담배농장, 사탕수수 농장, ...
쿠바에 대한 수 많은 수식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전 굴러가는 소리에도 춤을 추는 나라"였다.
정말이었다. 아바나 공항에 도착해서 수하물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쪽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다. 관광지에서 떨어진 일반 가정집들에서도 빠른 템포의 음악들이 흘러나오고 안에서든 밖에서든 춤을 추고 있다. 흥이 많은 민족이다.
쿠바 하면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악명 높은 통수가 그 것인데, 공항에 내려서부터 택시기사들의 통수, 숙소 호스트의 통수, 매장 점원의 통수 등에 대한 수 많은 여행자들의 증언이 있다. 외국인(여행객)한테 정가 이상으로 받기, 더 가치가 낮은 내국인 전용 화폐로 잔돈 거슬러 주기, 협의되지 않은 택시 합승, 건물 들어갈 때 가방 맡기면 귀중품 슬쩍하기, 요구하지도 않은 서비스 제공하고 돈 요구 등 전형적으로 관광지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들이지만 수위나 빈도 면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여행자들은 입을 모아 증언한다.
그러나 아주 약간의 경계심과 '응 다 알고 왔어~'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매사 대하면 당할 일은 웬만하면 없다. 자본의 맛을 깨친 관광업 종사자들은 그렇다 해도, 그렇지 않은 일반 쿠바노들은 세상 순박하다. 도움을 요청하면 제 일인양 도와주고, 해맑은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네며 꼬레아노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다.
치안과 경제에 대해 말을 안 할 수가 없겠다.
자정 넘어 아바나 공항에 도착해 아바나 시내로 들어온 시간은 새벽 3시 경이었다. 택시로 숙소 근처 골목골목을 지나는데 미국 할렘 저리가라 할 정도의 험악한 분위기였다. 허물어져 가는 벽에, 가로등에 겨우 의지하지만 여전히 어둑어둑한 도로는 군데군데 파여 있어 차가 수시로 덜컹였다. 쓰레기는 아무렇게나 내팽개져 있었다. 웃통을 벗어제낀 형들이 뭘하는지 삼삼오오 모여 있고, 차도와 인도 구분 없이 활보하고 있었다. 무서웠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알게된 건, 그날 받은 인상처럼 험악하지 않고 되려 순하고 정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미국의 경제제재로 수/출입 길이 막힌 쿠바는 외화를 벌어들일 다른 수단을 관광업에서 찾았고, 이를 위해 관광객 대상 범죄를 강경하게 다루고 있다. 그래서 치안이 매우 좋다. 비록 통수는 쳐도 말이다. 통수는 시스템이 부재해서 그런 것 같다.
쿠바는 스페인어를 쓴다.
스페인어에 대해선 정말 1도 모르는 내가 스페인어 공부를 하려니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는 기분이 들어 설렜다. 하지만 설레고 기대한만큼 실천은 못해서 자기 소개, 숫자, 의문사, 중요 단어만 몇 개 외우고 영어할 줄 아냐는 말을 외워서 웬만하면 영어로 했다. 번역기도 쓰고... 영어하는 사람이 가뭄에 콩나듯 있어서 불편함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했다. 쿠바여행을 간다면 꼭 스페인어를 제대로 익혀서 가시길.
쿠바 화폐는 이원화되어 있다 (2021년 이후로 외국인 전용 화폐가 폐지되었다).
2가지 화폐를 사용한다. 내국인 전용과 외국인 전용. 두 화폐의 가치는 다른데 당연히 외국인 전용이 훨씬 비싸다. 내국인 전용 화폐는 1CUP(모네다 라고도 한다.), 외국인 전용 화폐는 1CUC (약 24CUP). 크게 이 둘을 구분하는 방법은, 지폐 뒷면에 0건물이나 동상이 있으면 CUC, 인물이 있으면 CUP이다.
도시 간, 도시 내에서의 이동 수단이 다양하다.
주로 내국인이 이용하고 악평이 대부분이었던 기차, 외국인 관광객들 전용의 비아줄 버스, 뜨란스뚜르, 현지인 버스, 개조트럭인 카미욘, 국영 택시, 합승택시 콜렉티보, 귀여운 디자인의 꼬꼬택시, 자전거 택시인 비씨택시, 말택시 등. 나는 여행내내 최대한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보고 싶었다.
쿠바 음식에 대해선 악평이 많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음식에 대해 경고 했다. '너무 짜고 맛없다, 한국 음식 무조건 챙겨가길 추천한다' 등. 물론 아바나에 있는 (한국, 미국 물가와 비교해도) 비싼 식당들은 맛있다. 하지만 내가 지향하는 여행은 그 나라, 그 문화를 오롯이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대부분의 식사를 현지식으로 먹어야 한다. 하지만 상황이라는 게 모르는 거니 안성탕면 4개 들이 한 봉지, 아몬드 빼빼로 2개, 에너지바 몇 개를 챙겨갔다. 현지인이나 다른 외국인 관광객과 나눠먹을 심산도 있었다. 근데 괜히 챙겼다. 공간만 차지하고 정말 먹고 싶어서 먹었다기 보다는 공간 확보를 위해 처리했다. 열대지방이라 과일이 너무 맛있었다. 트리니다드에서 묵었던 까사의 구아바 주스와 뚱뚱한 바나나는 평생 못 잊는다. 돼지/닭/소고기를 이용한 요리, 랍스터 요리가 많다. 개인적으로 로파 비에하라는 소고기 장조림, 밥, 야채 등을 접시에 올려서 먹는 요리가 입맛에 맞았다.
숙소는 까사
관광객 유치를 위해 국가에서 전국적으로 까사 시스템을 도입했다. 아래 까사 로고가 붙어있는 집은 외국인 여행자들이 묵을 수 있도록 정부의 승인을 받은 까사다. 보통 1박에 15CUC 내외고 당연한 얘기지만 시설, 조식, 세탁, 위치 등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거점 도시마다 한국인들이 모이는 유명한 까사들이 있고, 거기엔 정보북이 있다. 정보북이란 건, 인터넷 이용이 까다로운 쿠바에서 발휘된 한국인 집단지성의 산물이다. 그 까사를 거쳐가는 한국인들이 까사 주변, 혹은 쿠바의 여행지 전반에 대해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을 토대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을 수기로 적어 놓는 노트다.
인터넷 불모지, 그 곳에서의 한 줄기 빛 MAPS ME 앱
쿠바에서 인터넷을 하려면 보통 몇시간을 기다려서 와이파이 카드를 산 다음에 복권처럼 긁어서 나오는 일련번호를 폰에 입력해야 한다. 이마저도 지정된 몇몇 와이파이 존에서만 이용 가능하다. 보통 공원인 경우가 많은데 사람들이 모여서 핸드폰 보고 있는 곳, 바로 거기다. 근데 그마저도 카드가 일련번호와 함께 긁혀서 날리는 경우, 인터넷이 잘 안터지는 경우가 꽤 있어 발암을 유발한다. 나는 미디어 금식을 시도해보고자 2주 간의 여행동안 인터넷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성격상 그 편이 맞았다.
쿠바에서는 구글맵도 무용지물이다. 그런 상황에서 MAPS ME어플은 한줄기 빛이다.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여행자들이 남겨놓은 관광지, 식당, 카페 등의 후기, 별점이 큰 도움이 된다. 한국 사람들, 정말 많이도 다녔다. 덕분에 괜찮은 숙소,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볼 만한 자료(이외에도 많지만 몇 개만 추린다)
경향신문 르포 - 손호철의 쿠바기행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2312114005&code=960100
블로그
http://blog.naver.com/prologue/PrologueList.nhn?blogId=sh910213
http://travelwriter.kr/america/7773
https://hosunyo.tistory.com/120
https://blog.naver.com/1978mm/221545148030
유튜브 - 강감찬TV(핫쿠바마타타)
https://www.youtube.com/watch?v=gAOwDfhCXwc
유튜브 - 여락이들
https://www.youtube.com/watch?v=er6Y3uWNX0g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 Cuba and the Cameraman
TV프로그램 - 트래블러
출처
그림1 https://www.pinterest.com/pin/541909767652327263/
그림2 https://hackerette.com/traveling-cuba-deal-currency-excha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