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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본문

서평

[서평]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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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36GT2zI8lVA 

 

중고등학생 때, 필독도서목록으로 자주 봤던 책.

 

궁금증을 자아낸단 점에서 제목을 참 기깔나게 지었다. 리처드 파인만이란 인물을 모르는 한, 장르가 무엇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유머모음집?

 

십수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중고등학생 때 못다한 과제를 해치우듯, 학문하는 자의 면면을 보고 배울 점이 분명 있으리라는 기대와 함께 책 한권 가볍게 읽고 싶었다.

 

 

 

노벨 물리학상에 빛나는 천재 물리학자의 기상천외한 인생 에피소드!

 

표지에 적힌 광고문구다. 노벨상을 수상할 정도의 과학자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수기 형식으로 쓰였겠다. 1판 1쇄인 2000년 이후 정부의 이공계 진학 지원정책이라는 날개를 달고 쇄를 거듭해 2020년까지 개정 없이 68쇄. 오래도 버티는구나. 20년간 개정없이 쇄를 거듭한 출판사에게 번역의 아쉬움을 표한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 책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공계 뿐 아니라 전 학문에 걸쳐 미래 연구자들이 백번 공감하거나 앞으로 그들의 커리어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자극을 줄 에피소드들이 많다. 연구윤리, 학문에 대한 자세, 세상을 보는 관점 등에서.

 

읽으며 인상 깊었던 부분을 적어둔다.

 

... 그는 미소를 머금은 채 물리학에 대해서, 그림들과 방정식들에 관해서 강의하기 시작했다. 그의 웃음과 눈의 광채가 전달하는 것은 비밀스러운 농담이 아니라 물리학, 그 자체의 즐거움이었다! 이 즐거움에는 전염성이 있다. 우리는 이 전염병에 걸리는 행운을 누렸다. ...

-책 서두에 있는 제자의 추천사 중

월터 르윈 교수의 <나의 행복한 물리학 특강>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1권

 

"그 아이는 생각으로 라디오를 고친다고요!" 23p

 

MIT 시절에 나는 사람들을 놀리기를 좋아했다. 한번은 기계 제도 시간이었는데, 어떤 실없는 친구가 운형자를 들고 말했다. "이 곡선에 어떤 공식이 있을까?" 나는 잠시 생각한 뒤에 말했다. "있지, 이 곡선은 아주 특수한 곡선이야. 내가 보여주지" 그러고 나서 내 운형자를 들고 천천히 돌리면서 계속 말했다. "운형자의 곡선은 어떤 방향으로 돌려도 가장 아랫부분의 접선이 수평이 되게 만들어져 있어" 교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운형자를 들고 이리저리 돌리면서 한 손에는 연필을 들고 가장 낮은 점에 수평으로 대어 봐서 접선이 수평임을 확인했다. 미적분 시간에 모든 곡선이 최소점에서의 도함수가 0이라는 것을 "배워"놓고도 모두들 이 "발견"에 흥분했다. 그들은 자기가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이해함으로써 배우는 것 같지 않다. 그들은 그냥 기계적으로 배우는 것이다. 이런 지식은 취약하기 그지없다. 44-45p

 

"헤헤헤헤헤.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79p

책제목의 비밀이 풀리는 순간이다. MIT에서 공부하던 파인만은 다른 학풍도 겪어봐야 한다는 지도교수의 말에 프린스턴으로 박사과정에 입학한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의 풍을 따라하던 기숙사 행사에서 파인만은 차에 크림을 넣을지, 레몬을 넣을지 물어보는 부인에게 '둘 다요'라고 대답했고 이에 대한 부인의 반응이 이 책의 제목이었던 것이다. 파인만의 대답이 영국식 예절에서 벗어나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해당 챕터에 소개된 다른 에피소드들로 미루어보아 저자가 제목을 여기서 따 온 이유는, 아마 전통,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들을 학문에 방해되는 것으로 여기는 본인의 학문하는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기 때문이 아닐까. 약간 비꼬는 뉘앙스를 가미해서 말이다.

 

2권

 

진짤 활동과 도전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실험가들과 접촉하지 않고,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으면, 아무 일도 없다! 10p

 

내가 한 일은 아무런 중요성도 없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중요했다. 내가 노벨상을 받게 된 그림(파인만 다이어그램 - 옮긴이)을 비롯한 모든 업적은, 흔들리며 날아가는 접시를 생각하며 시간을 낭비한 일에서부터 나왔다. 23p

파인만이 식당에 있을 때 어떤 친구가 장난으로 던진 접시를 보고 회전하는 접시의 운동(각도가 아주 작으면 표지의 회전이 좌우 흔들림의 두배)에 대해 생각했고 이 것이 노벨상을 가능하게 했던 아이디어의 시작이었다는 에피소드.

 

상당한 궁리 끝에, 나는 학생들이 모든 것을 암기했지만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들은 "굴절률이 있는 매질에 반사된 빛"이라는 말을 들어도, 물 따위가 여기에서 말하는 매질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들은 "빛의 방향"이 우리가 물건을 바라볼 때 시선 방향이라는 것도 몰랐다. 모든 것을 완전히 암기하고, 아무것도 의미 있는 말로 전환되지 않는다. 79-80p

 

내가 학생들에게 할 수 없었던 것 중에는 질문을 하게 하는 것도 있었다. 마침내 한 학생이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강의 도중에 제가 질문을 하면, 나중에 모두들 저에게 이렇게 말하죠. '왜 귀중한 강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거야? 우리는 뭔가를 배우려고 하는데, 왜 네가 질문을 해서 강의를 중단시키지?'"

강의는 마치 일인극처럼 진행되고, 학생들은 다 아는 것처럼 앉아 있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이 안다고 생각하고 있고, 학생 하나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을 물으면 화를 내고 마치 그것이 아주 분명해서 이해하기 쉽다는 듯이 질문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같이 공부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학생들에게 말했지만, 그들은 따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묻는 것이 체면 손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건 아주 불쌍한 일이다! 그들은 똑똑하고 성실하지만, 이런 우스운 태도로 하는 이상한 '자습'은 아무 의미가 없다! 82-83p

 

나는 그렇게 했다. 촤라라라락. 아무데나 손가락을 짚고, 읽어나갔다.

"마찰형광. 마찰형광이란 결정체가 부서질 때 빛이 방출되는 것을 말한다......"

내가 말했다.

"여기에 과학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건 단지 한 단어를 다른 단어로 설명하는 것 뿐입니다. 여기에는 자연에 관해서 어떤 언급도 없습니다. 어떤 결정이 부서지면서 마찰형광을 내는지, 왜 빛이 나오는지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집에 가서 실험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학생들은 실험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썼다고 합시다. '캄캄한 방에서 설탕 덩어리를 팬치로 부수면 파란 빛이 난다. 몇 가지 다른 결정에도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현상을 마찰형광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누군가가 집에서 직접 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자연에 관한 경험을 얻게 되지요." 86-87p

 

토론회에서 재미난 일도 딱 한 가지 있었다. 토론회에서 전원이 참석하는 회의는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속기 타자수가 발언을 한마디 한마디 모두 기록한다. 둘째 날에 타자수가 내게 와서 물었다.

"직업이 뭡니까? 절대로 교수는 아니시겠죠?"

"나도 교수입니다"

"무슨 교수입니까?"

"물리학 - 과학이죠"

"아! 그게 이유이군요"

"무슨 이유 말입니까?"

그가 말했다.

"알다시피 저는 타자수입니다. 그래서 모든 발언을 기록하죠.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말할 때는 타자를 하면서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당신이 질문하거나 발언할 때는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당신이 교수가 아니라고 생각했죠!" 183p

 

몇몇 위원들이 속이 빈 책에 등급을 매겼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들은 책이 비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들이 여기에 등급을 매겼기 때문이다. 사실 속이 빈 책이 다른 두 권보다 조금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을 추리해 보니, 대략 이런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 책을 나눠주면, 그 사람들은 바빠서 읽어볼 시간이 없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으니까, 별 문제 없을 거야.' 그러고는 아무 숫자나 기입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만, 몇 사람이 그렇게 한다.

...

책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기 위해 무성의하게 읽은 많은 사람들에게서 받은 보고를 평균하는 것은 마치 다음과 같이 문제를 푸는 것과 같다. 아무도 중국 황제를 볼 수 없다. 그런데 중국 황제의 코 높이는 얼마나 될까? 이걸 알기 위해 모든 중국 백성에게 황제의 코가 얼마나 높은지 물어보고, 이 숫자를 모두 더해서 평균한다. 이 값은 수많은 사람들의 답을 평균했기 때문에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를 푸는 방법이 아니다. 문제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아무리 많이 참조해서 평균한다해도, 이런 방법으로 지식이 정확해지지는 않는다. 201-202p

 

요약하면, 모든 정보를 밝혀서 다른 사람들이 나의 기여를 심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편파적인 정보만 밝혀서는 안된다.

... 예를 들어 광고를 생각해보자. 어젯밤에 나는 웨슨 식용유가 음식에 스며들지 않는다는 선전을 들었다. 이것은 사실이며 부정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부정직하지 않은 것 정도가 아니다. 이것은 과학적 통합성의 문제이며 앞의 것과는 수준이 다른 것이다. 이 광고에 덧붙여야 할 사실은, 적절한 온도에서 사용하면 웨슨 식용유를 비롯한 모든 식용유가 음식에 스며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온도에서 사용하면 모든 식용유가 스며든다는 것이다. 광고에서 전달되는 것은 인상일 뿐이지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지금 다루어보려는 것이다. 265p

 

종류는 다르지만 잘못된 과학에 특징적인 오류가 있다. 코넬 대학에 있을 때 나는 심리학과 사람들과 자주 얘기했다. 한 여학생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이 어떤 환경 X에서 실험했더니 생쥐들이 A라는 행동을 했다. 이 학생은 여기에서 환경을 Y로 바꿔도 생쥐들이 A라는 행동을 하는지 알아보고 싶어했다. 그래서 이 학생의 계획은 Y환경에서 실험을 해서도 결과가 A인지 보는 것이었다.

나는 학생에게, 먼저 앞사람이 한 실험을 자기 실험실에서 재현해 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조건 X에서 같은 결과 A가 나오는지 확인하고, 그 다음에 조건을 Y로 바꿔서 결과가 바뀌는지 보는 것이다. 이 학생은 자기가 환경을 확실히 통제한다는 점이 진짜 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269p

 

... 1937년에 영이라는 사람이 아주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그는 긴 복도 양쪽에 문들을 만들고, 한쪽에서 쥐가 나오게 하고 반대쪽에 음식을 두었다. 그는 쥐가 처음 음식이 있던 문이 아닌 다른 문으로 가도록 훈련할 수 있는지 보려고 했다. 쥐는 즉시 전에 음식이 있던 문으로 달려갔다. ... 문 앞의 모양을 완전히 똑같이 만들었다. 그러나 생쥐는 이번에도 알아 맞췄다. ... 화학 약품을 써서 실험할 때마다 냄새를 지웠다. 그런데도 쥐들은 음식이 있는 문을 알아냈다. ... 이번에는 회랑에 빛이 들어가지 않게 덮었다. 그런데도 생쥐는 음식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

마침내 그는 생쥐가 달릴 때 마루가 울리는 소리를 듣고 정보를 얻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은 실험 세트를 모래 위에 놓아봄으로써 가능했다. 이런 식으로 그는 가능한 실마리를 하나씩 제거해서 생쥐를 속이고 그들로 하여금 다른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배우게 했다. 그가 이 조건을 하나라도 없애면, 생쥐는 음식이 있는 곳으로 곧장 가버린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일등급 실험이다. 이것은 생쥐 실험을 의미 있게 한 실험이다. 270-271p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 내가 설명한 과학적 통합성을 유지할 만큼 자유스러운 곳, 즉 조직체 내에서의 지위나 자금 지원, 또는 다른 어떤 문제 때문에 강제로 이러한 통합성을 잃게 되지 않는 곳에 속해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이런 자유를 누리기를 기원한다. 27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