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LLM

[쿠바 #2] 해 아래 모든 것이 새롭다. 본문

여행/20겨울, 쿠바

[쿠바 #2] 해 아래 모든 것이 새롭다.

HLLM

2020/1/7/화

Felix 까사 - 환전 - 호아끼나 까사 체크인 - 기차표 구매  - 점심 - 혁명광장 - 저녁 - 호아끼나 까사

 

8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으러 나왔다. 호스트 Felix 아저씨의 아내분 Laura가 나와 볼뽀뽀를 했다. 볼뽀뽀는 처음이어서 당황했지만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

 

아침메뉴는 쿠바 음식이 워낙 맛없다는 얘기가 많아 잔뜩 긴장한 것에 비해 평범했다. 무엇보다 과일이 많아서 좋았다. 여행 첫날이니 만큼 에너지 비축을 위해 다 비웠다. 다만 구아바 쥬스가 아닌 망고쥬스라면 더 좋았겠다.

 

<사진1> 첫날 아침. 쿠바식 커피, 구아바 쥬스, 모닝빵, 바나나, 구아바, 토마토, 달걀 지단

 

 

씻고 다시 짐 싸고 9시 30분쯤 나왔다. 환전을 위해 CADECA에 간다니까 동행해주면서 백팩까지 들어주셨다.

도보로 까삐똘리오까진 15분, 거기서 오비스뽀까지 또 15분이 걸렸다. 낡을대로 낡았지만 저마다 다른 색을 입은 건물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아침이 일찍 시작되는 열대지방의 나라 답게 벌써부터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녔다. 주인 없는 개들도 많았고, 군데군데 파인 아스팔트에 물이 고여있었다. 그 위로 쾌청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개성있는 벽화들도 많았다.

 

<사진2> 아바나의 거리

 

 

Felix 아저씨와 작별하고 오비스뽀 거리에 있는 CADECA에서 가지고 있는 캐나다달러를 CUC, CUP 반반으로 환전했다. 액수가 맞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까삐똘리오 바로 옆에 있는 호아끼나 까사로 향했다. 가는 내내 주변을 둘러보는 게 재밌었다. 블로그와 유튜브에서 보던 스팟들을 직접 보고 '아 내가 결국 왔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아바나 국립극단 앞에는 번쩍이는 올드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까삐똘리오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 호아끼나에 도착한 나를 처음 맞아준 건 덩치 좋고 얼굴에 상냥함이라곤 없는 아저씨 한 분. 빈방이 있냐고 물으니 퉁명스럽게 기다려보라고 하신다. 이어 주인 아주머니로 보이는 깡 마른 여자분이 손에 피던 담배를 끼우고 살갑게 맞아주신다. 마침 빈방이 있다고 해서 묵기로 하고 짐을 맡겼다. 가격은 조식포함 10쿡이었다. 혜잔데?

 

아바나엔 이틀을 더 머물다가 산타클라라로 이동할 계획이어서 교통편을 알아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산타클라라는 체게바라 기념관이 있으며 체게바라 혁명의 큰 전환점이 된 작전지이기도 하다.

적도 카리브해 연안에 위치한 섬나라 답게 일찍 시작하는 하루에, 종일 내리쬐는 햇빛 때문에 물이 필요했다. 호스트 아주머니 왈, 한국인 투숙객이 두고간 미니 정수기 (자랑스러운 태극기 스티커가 붙여있었다) 덕에 호아끼나는 투숙객들에게 무료로 2L짜리 물을 제공한다. 물론 페트병은 재활용이다. 몇번을 재활용 했는진 장담할 수 없다... 여튼 감사한 마음으로 들고 나왔다.

 

잠시 쿠바의 교통편에 대해 알아보자. 나는 최대한 현지인들의 생활방식을 체험하며 여행하자는 주의라 외국인 여행객에 더해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교통편을 두루 알아보았다.

먼저 뜨란스뜨루, 비아줄 버스가 있다. 온라인 예약이 가능하고 다른 편에 비해 깔끔하지만 가격이 착하지 않고(체감상 한국이랑 비슷하다) 뒤통수 맞을 가능성이 조금이지만 있다는 평이었다. 다음으로는 이들보다 럭셔리한 콜렉티보(합승택시)가 있다. 하지만 돈은 돈대로 주고 버스보다 불편할 수 있다. 사람을 모아 택시 기사분과 사전 약속을 해놓고 정해진 금액을 지불하는 방법이 있는데, 기사님의 노쇼 리스크가 있다. 즉흥적으로 택시를 잡으면 기사님이 인원 다 채우고 간다고 다 채워질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릴 수도 있다. 택시는 기본적으로 여행 일정이 허공으로, 또 에어컨이 대부분 안 되는 쿠바의 올드한 차들 안에서 찜통더위로 고생할 수 있는 리스크가 있다. 여기까진 주로 외국인 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수단이었다.

 

현지인들이나 저예산 여행자, 여행고수(?)들이 이용하는 교통편에는 개조트럭인 까미욘과 현지 버스가 있다. 까미욘은 화물트럭을 개조해서 화물적재용 공간에 사람들이 타고 가게 만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난이도가 가장 높은 교통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건 좌석을 만들고 위에 뚜껑을 덮어 놓은 것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하이웨이, 하이웨이 그란데를 돌아다녀본 결과 까미욘에 외국인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으로 현지 버스. 몇번 타봤는데 뭐 나름 탈만하다. 대신 주로 아침 일찍 다니며 정해진 스케쥴이 없다. 산타클라라에서 트리니다드로 갈 때, 트리니다드에서 플라야히론으로 갈 때 현지인 버스를 이용했었는데 버스 정류장/터미널을 찾는데 조금 헤매기도 했고 언제 올지 모르는 상태로 하염없이 기다리는 불편함이 있었다. 가장 불만이었던 것은 앞에 탄 현지인들에게는 10쿱(0.4쿡)을 받았는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5쿡 (125쿱)을 받았다. 자꾸 따지니까 트렁크에 실은 짐을 꺼내서 내려놓는 걸 보고는 5쿡을 낼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태워준 것만 해도 감사...

 

 

 

먼저 뜨란스뚜르, 비아줄을 먼저 찾아다녔다. 올드카가 줄지어 있는 곳에 뜨란스뜨루 버스들이 간혹 보였다. 기사분께 물어보니 까삐똘리오 근처 호텔에서 예약이 가능하다고 한다. 들어가 얘기해보니 27쿡이었다. 내 예산에 비해 가격이 너무 높았다. 비아줄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바나 시내에서 걸어서 이동하기 어려울 정도로 멀었다.

 

그렇다면 “그 교통편”을 이용해야 하는 것인가... 대망의 마지막 “그 교통편”은 기차였다. ‘기차? 무난하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참고한 여행기들 사이에서 쿠바에서 기차를 타봤다는 글은 딱 하나 있었고(브런치 어떤 공대생 분의 글이었다) 그 글의 제목은 “하지 말라는 데는 이유가 있다”였다. 그 분이 탄 건 야간 열차였는데 '낡았다, 시끄럽다, 짐 지키느라 잠을 못 잤다' 정도가 기억에 남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가격이고 경험이었다. 기차역을 맵스미에 검색해보니 도보로 얼마 안 걸렸다. 20분? 매표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위치에 다다르니 기차가 안 다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관리가 안 되어 있는 기찻길이 눈에 들어왔다. 운행 중인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낡은 화물열차들이 간혹 보였다. '상대는 쿠바다' 라는 생각에 좀 더 걸어봤다. 빙 둘러 10여분을 더 걸은 끝에 매표소와 대합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분위기를 보니 매표소가 맞았다. 내가 분위기를 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기차역 표지판, 간판 따위는 없었고 그나마 믿고 있었던 맵스미 앱에도 여기가 매표소다 라는 게 없었다. 아 참, 쿠바에서 영어는 기대하지 말도록 하자. 수도인 아바나의 소수 으리으리한 호텔, 유명세를 탄 맛집, 관광지를 제외하면 영어를 찾아보기 힘들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도 손에 꼽는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수입제품으로 몸을 치장한 젊은이들이나 의사가운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면 그들에게 희망을 걸어볼 수 있다. 쿠바는 의료, 교육이 무상이라 병원도, 의사도 많아서 의사가 꽤 보인다. 의사 가운이나 수술복을 입은채로 다니는 경우가 더러 있더라.

어쨌든 매표소에 설치되어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쿠바 나름의 질서대로 순서를 기다린 끝에 내 차례가 왔다. 번호표? 없다. 순서대로 앉기? 없다. 다행히 영어할 줄 아는 사람이 있어 모레 저녁에 출발하는 산타클라라행 기차표를 살 수 있었다. 가격은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괜찮았다. 1등석이 30쿱, 2등석이 20쿱이었다. 이왕 타는 김에 순도 100% 현지체험, 2등석으로 간다. 산타클라라행 기차는 야간열차였다. 오히려 좋다. 숙박비도 해결. 이 모든 게 천원이었다. (24쿱=$1)

'6-7시간 야간열차 천원? 얼마나 안 좋다는 거냐. 후후...' 하지 말라는데는 이유가 있다? 아니.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 제대로 체험하고 후기를 작성해보이겠다는 기대가 걱정을 앞섰다. 표를 구입하고 바로 옆에 위치한 대합실에 들어가 직원에게 표를 보여주며 물어보고 모레 저녁에 와서 여기서 타면 된다고 확답을 받았다.

 

<사진3> 표를 사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

 

<사진4> 비교적 현대적인 아바나 외곽의 한 상점. 출입 고객 수를 제한하는 모양이다.

 

 

뿌듯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와 체크인을 하고 일본인 룸메 2명과 대화를 나눴다. 처음 얘기를 한 친구는 헤어디자이너였다. 다른 친구가 들어왔지만 낯을 좀 가려서 대화는 금방 마무리가 됐다.

2시 좀 전에 나와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모네다(쿱) 식당이 보여 점심을 먹었다. 하와이안피자 1판이랑 유호 데 나랑하(오렌지주스) 30쿱 안 하는 가격에 배불리 먹었다.

 

<사진5> 햄&하와이안 피자와 오렌지쥬스. 30쿱 이하

 

 

 

주변 구경을 하다보니 좀 추워져서 남방을 걸쳐입고 다시 주변을 탐색했다 (다니는 내내 늦여름~초가을 날씨). 자전거를 빌려볼까 하는 생각에 맵스미에 검색해서 오비스뽀 거리에 있는 대여점에 갔다. 하루 15쿡이란다. 하루 숙박비가 10쿡인데? 여긴 참 가격기준이 제멋대로다.

해 지는 시간대를 노려 혁명광장 가는 버스를 타러 갔다. 첫 현지 시내버스를 탄다. 채송화님 여행 블로그에서 대략의 버스노선 정리한 이미지를 폰에 저장해놓은 게 전부라 버스 정류장 찾는데 고생 좀 했다. 버스 정류장엔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지만 한줄서기는 아니었다. 울띠모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마지막에 온 사람"을 찾는 “울띠모”를 외치면 그가 자기임을 얘기하고 그 사람만 기억하고 있으면 된다. 근데 막상 버스 오니까 앞문, 뒷문 할 것 없이 탄다. 뭔데?

 

<영상1> 2층 버스가 아니고 2단 버스

 

버스 정류장에 흰 종이가 꼬깔모양으로 돌돌 말린 것들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다. 마야..ㄱ..? 뭔가 하고 보니 그 꼬깔에 땅콩을 넣어서 1쿱에 파는 분들이 있었고, 남녀노소 꽤 사먹는 눈치였다. 이따가 먹어봐야지. 버스비는 1쿱인데 내가 잔돈이 없어서 난처해하니 바로 앞에 있던 아저씨가 1쿱을 쥐여 줬다. 참 정이 많은 아저씨. 한편으론 의문이 생긴게,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비해 공무원, 심지어 의사들도 한달 급여가 약 30쿡 정도라는데, 그게 아닌 사람들은 더 힘들텐데 이렇게나 쉽게 1쿱을 준다고? 여튼 감사하게 받아서 버스비를 낼 수 있었다.

 

 

<사진6> 버스 정류장 근처에 널려 있는 땅콩 포장지들

 

체 게바라와 카밀로의 얼굴이 그려진 정부청사와 혁명탑이 마주보고 있는, 숙소로 돌아갈 쯤엔 노을이 져 황홀했던 혁명광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시내로 오는 버스비 1쿱을 만들어야 해서 길거리 땅콩 할머니한테 10쿱짜리를 건네며 하나 달라고 하니까 막무가내로 땅콩 5개와 5쿱을 내민다. 영어 쓸 줄 아는 젊은 쿠바여자가 무슨 일인가 물어봤고 덕분에 1개 사서 9쿱 만들고 버스타고 왔다. 할머니 저도 힘들다구요...

 

<사진7> 포커스가 나갔지만 맘에 드는 사진. 혁명광장

 

미리 찾아둔 맛집 "엔 첸칠라다"에서 저녁을 먹었다. 블로거 돌멩이님의 글에서 본 최애 메뉴를 믿고 시키려고 보니 점원이 그거 없지만 거의 똑같은 거 있다고 해서 그거랑 모히토랑 시켜 먹었다. 쿠바의 음료 라인 중 첫 시도였다. 맛있었다. 분위기도 탈쿠바라 할 만했다. 3층 루프탑이었고 여행 온 외국인들이 테이블을 채웠다. 점심 때 와서 먹어도 좋을 것 같다..

<사진8> 쿠바 최애 음식 로파 비에하. 쿠바여행 중 각기 다른 식당에서 3번은 먹었다. 8.5CUP

 

 

<사진9> 아바나 국립 극장의 야경

 

 

호아끼나 와서 씻고 책 좀 보다 잤다.

 

출처

갤럭시 S9+ 기본카메라